1단계 야마
(Yama, 禁氣 전 인류에 고통되는 보편적 도덕률)
제1단계는 야마 (윤리적인 계율들), 즉 신조, 국가, 연령과 시대를 초월한 계율들로, ① 아 힘 사(ahimsa, 비폭력, 불상 생) ②시트야(satay, 진실, 불망의) ③ 아 그에야 (asteya, 不偸盜) ④ 브라 마차리야 (brahmacharya, 절제, 금욕) ⑤ 아파 리그라 하 (aparigraha, 不貪)이다.
이 계율들은 사회와 개인에 대한 도덕규범으로서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 혼란, 폭력, 거짓, 도벽, 방탕, 탐욕 등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악의 근원은 바로 탐욕과 집착 등의 감정들인데 단지 그 정도가 적을 수도, 중간일 수도, 과다할 수도 있다. 그것들은 단지 고통과 무지를 가져다줄 뿐이다. 파탄잘리는 야마의 다섯 가지 계율로서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이 악의 근원들을 파헤치고 있다.
① 아 힘 사 (Ahimsa, 비폭력, 불살생) : 부정관사인 부정을 의미하는 'a' 살생이나 폭력을 의미하는 명사인 'hims'의 합성어이다. 그러나 단순히 살생하지 말라는 부정의 명령보다는 사랑이라는 긍정적이고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사랑은 우리가 같은 어버이 Lord를 가진 자식들이기 때문에 모든 생물체를 포용하고 있다.
요기는 사물을 파괴하거나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한다. 인간들은 보통 먹이를 구하거나 또는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살생한다. 그러나 단지 그가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반드시 그가 체질상 비폭력주의자나 요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요가의 수행에 있어서 채식 식이요법이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잔인한 폭군이 채식주의자일 수 있으며, 하여튼 폭력은 먹거리의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도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칼은 과일을 깎기 위해서 사용할 수도 있고 적을 찌르기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은 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자에게 있다.
사람은 그 자신의 이익 즉 자기 육체, 그가 사랑하는 것들, 그들의 재산이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다. 그가 혼자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사람은 모든 힘의 원천인 절대 신성을 의지함으로써 어떠한 악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폭력은 두려움, 나약함, 무지와 불안해서 나온다. 이것을 제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을 두려움으로부터 해방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 인생관을 바로잡고 마음을 재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폭력은 인간이 그들의 믿음을 무지와 미신보다 오히려 현실과 탐구에 바탕을 두고 있을 때 반드시 쇠퇴하게 마련이다.
요기는 모든 생명체에는 고유한 삶의 몫이 있고 그 자신만큼 똑같이 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타인을 독기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를 애정이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요기는 자기 삶이 타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행복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 그는 자기 행복보다 다른 이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고, 그가 만나는 모두에게 기쁨의 원천이 된다. 마치 부모는 어린아이가 첫걸음마를 뗄 때 요기를 주듯이, 요기는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며 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정의를 요구한다. 반면에 우리들 자기 잘못에는 자비와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요기는 그 자신에 의한 잘못에 대해서는 정의를 구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요기는 그 자신에 의한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한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고 그것을 가르친다. 항상 자신이 완벽에 이르도록 정진하면서 가없는 사랑과 연민으로 그들의 삶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준다.
요기는 죄인이 범한 죄는 미워하되 그 죄인은 미워하지 않는다. 그는 죄인이 범한 행위에 대해서 처벌하기보다는 참회하도록 한다. 죄는 미워하되 죄를 범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 마치 주정뱅이의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되 그 주벽은 미워하는 것과 같다. 악행에 대한 사랑이 없는 미움은 폭력을 부른다. 또, 악행을 책하는 마음 없이 그저 사랑만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결국 불행에 이르게 된다. 요기는 죄인 속에 들어 있는 악과는 싸우면서 그 죄인을 사랑하는 것이 올바른 길임을 알고 있다. 그가 사랑으로 맞선 싸움은 반드시 이긴다. 자애로운 어머니는 자식의 나쁜 버릇을 고쳐 주기 위해서 매를 들듯이, 진실한 아 힘 사의 실행자는 이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적을 사랑한다.
아힘사를 따르다 보면 어느새 아바야 (abaya, 두려움으로부터의 벗어남)과 아크로 이른다. 두려움 없는 삶은 단지 순수한 삶을 영위하는 자들에게 온다. 요기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또 아무것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자신을 살피는 수행이 그를 맑게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사람을 덮쳐 마비시킨다.
사람들은 미래, 미지의 것,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생계 수단, 부와 명예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을 죽음에 대한 공포다. 요기는 그 자신과 영혼이 잠시 머무르는 집과 같은 육체가 별개의 것임을 안다. 그는 자신 속에서 만물을 보고 또 만물 속에서 자신을 보기에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병들고, 늙고, 쇠약해지고, 마침내 죽을 수밖에 없는 유리들 육식이지만 영혼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요기에 죽음은 삶에의 열정을 불어넣는 자극제와도 같다. 그는 '절대 신성'에 그의 마음, 이성, 그의 전 인생을 바쳐 오고 있다. 그의 모든 것이 '절대 신성'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분노 Krdkha 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마음을 타락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성숙에 연결되는 분노이다. 전자의 바탕에는 자만심이 깔려 있어 사소한 것에도 우리를 성나게 한다. 이것은 마음이 올바른 견해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방해하고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와는 반대로, 요기는 그의 내면이 비루해지고, 그의 경험과 학식이 그를 어리석음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할 때 자신에게 화를 낸다. 그는 그 자기 잘못을 다룰 때는 매우 엄격하지만 매우 곤 용적이고 유하다. 마음의 온화함은 요기의 특별한 성품이고, 그의 마음은 모든 고통을 녹인다. 요기의 마음속에는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타인에 대한 관용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서 요기가 있는 곳에서는 모든 적의가 사라지고 만다.
② 시트야 (Satya, 진실, 불망의): 우리 행동이나 도덕규범의 최고봉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진실은 신 God이고 신은 곧 진실이다.'라고 했다. 불이 불순물을 태우고 금을 정제하는 것처럼, 진실의 불꽃은 요기를 정화하고 그 안에 있는 불순물을 없애 준다. 만약 마음이 진실을 생각하고, 혀는 진실을 말하고 삶 전체가 진실 위에 있다면, 인간은 신과 드리던 결합할 수 있게 된다.
'실체' 그 본질은 사랑과 진실로서, 이 두 가지 면을 통해서 실체를 나타낸다. 요기의 삶은 이 실체의 두 가지 면을 엄격히 따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는 아 힘 사(비폭력)가 요구되는 것이다. 사느냐는 생각(思), 말(言), 행동에 있어서 완전한 진실성을 전세로 한다. 어떤 형태 로든지의 거짓은 구도자를 진실의 근본 법칙에서 벗어나게 한다.
진실은 말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말에는 네 가지 죄악이 있다. 악성과 망에, 기어, 양설이나 다른 사람이 중하게 여기는 것을 무시하는 것들이다. 소문을 꾸며내는 사람은 뱀보다 더 사악하다. 말을 삼가서 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악의를 뿌리째 뽑아 버리게 한다. 누구에게도 적의를 품고 있지 않을 때, 마음은 모든 이들에 대한 자비로 가득 찬다. 자신의 혀를 조절하는 법을 배운 이는 상당한 수준까지 자기 조절이 가능하다. 그런 사람이 말할 때는 누구나 존경심을 갖고 집중하여 듣는다. 그의 말 하나하나는 진실하고 값진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깊이 기억될 것이다.
진실한 사람이 맑은 마음으로 기도할 때, 그가 정말로 필요한 것들은 꼭 필요한 시기에 그에게 다가온다. 따라서 그는 원하는 것을 쫓아 헐떡일 필요가 없다. 진실 속에 확고하게 자신을 정립한 사람은 특별하게 애쓰지 않고서도 그 행위에 대한 결과를 얻는다. 모든 진실의 근원인 신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고, 그를 돌볼 것이다.
③ 아 그에야 (Asteya, 불투도): 다른 이가 가진 것을 갖고자 하고, 즐기고자 하는 욕망은 그릇된 행동을 하게 한다. 이 욕망으로부터 훔치고 싶은 충동과 그것에의 갈망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 그에야, 즉 불투도는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의 것을 함부로 갖는 것만 아니라, 그 사용 목적과는 달리 그것을 남용하거나 소유자가 허락한 기간을 넘겨서 사용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그건 고로, 이것은 악용, 신뢰를 저버림, 과오와 오용 등을 포함한다.
요기는 만약 그가 정말로 필요치 않은 것을 끌어모으면 그 자신을 도둑이라고 여기면서 그의 물질적 요구를 최소한도로 줄인다. 다른 사람들은 부, 권력, 명예나 향락을 갈구하고 있는 반면에 요기는 단 한 가지 갈망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절대 신성'에 하자는 헌신이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은 사람을 큰 유혹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욕망은 또한 고요한 흐름을 흐려 놓는다. 그것은 사람들을 천하고, 비열하고, 불구자로 만든다. '훔치지 않는다.'는 계율을 지키는 이는 모든 보물을 묻어 둘 수 있는 믿음직한 저장소가 된다.
④ 브라마 차리라 (Brahmacharya, 절제, 금욕) : 사전에 의하면, 브라 마차리 아는 금욕 생활과 종교적인 탐구와 자기 억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액의 소모는 죽음에 이르고 그것의 보존은 삶에 이른다고 생각한다. 정액을 보존함으로써, 요기의 육체는 달콤한 향기를 머금게 된다. 정액을 보유하는 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집중된 마음의 노력으로 그것을 금하는 계율을 지켜야 한다.
브라 마차리 아는 부정이나 강제된 엄격 또는 강제된 금지의 어느 하나도 아니다. 상 카라 차리라 Sankafacharya에 의하면, 브라 마차리 (브라 마차리 아를 실행하는 자)는 신성한 베다 Veda를 공부하는 이로 끊임없이 브라만을 향해 가고, 만물이 브라만 내가 있다고 알고 있는 자이다. 다시 말해서, 만물에서 신성을 느끼는 사람이 브라 마차리 rahmachari이다.
하지만, 파탄잘리는 육체와 말과 마음의 절제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요가의 철학이 독신자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브라 마차리 아는 그 사람이 독신자이든 기혼자이든 무관하다. 중요한 것은 브라 마차리와의 고도한 사상을 일상생활에 적용해야만 한다. 해탈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거나 가정을 꾸리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경전 smrtis 은 결혼을 권장하고 있는 입장이다. 인간적인 사랑과 행복을 경험하지 않고는 신적인 사랑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고대 인도의 모든 요기들과 현인들은 대부분 결혼하여 가정을 가졌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도덕적, 사회적 의무를 기피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것은 신성의 사랑을 안다는 것, 행복, 지고의 영혼과의 합일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을 가진 구도자의 처신에 대해서는 「시바 상히타 Suva Samhita」에서 말하고 있다. 그를 동료들에게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수행하도록 하라. 외관상으로는 사회에 머무르나, 그의 마음만은 사회에서 떠나야 한다. 그는 직업, 신분이나 계급상의 책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결과를 생각함이 없이 오로지 신의 도구로서 행동하게 하라.
그는 지혜롭게 요가의 방법을 따름으로써 성공(해탈)에 이른다. 거기에 다함으로써 이(利), 불리(不利)를 초월해서 그의 감각 기능을 억제함으로써 마침내 깨달음,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요가를 수행하는 가장은 선이나 악에 의해 물들지 않는다. 만약 그가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죄에 물들지 않는다.
브라 마차리 아를 이루게 되면 점차로 활동력, 힘, 용기, 강한 지성을 축적하게 되어 어떤 불의와도 당당히 대적할 수 있다. 브라마 차리는 그가 지혜로 이룬 힘을 사용할 것이다. 그는, 육체적인 힘은 ' 절대 신성'을 위하는 일을 위해, 정신적인 힘은 문화를 전파하는 데, 지적인 힘은 영적인 삶을 등장시키고 꽃 피우는 데 활용할 것이다. 브라 마차리 아는 지혜의 횃불을 당기는 불씨와 같다.
⑤ 아파 리그라 하 (Aparigraha, 불탐): 파리 그라 하 parigraha는 저장이나 모으는 것을 뜻한다. 모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파 리그라 하이다. 이는 단지 불투도 asteya의 또 다른 면에 불과하다. 사람이 정말로 필요치 않은 것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장 필요치 않은 것을 사 모으고 저장해서는 안 된다. 또 자신은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다른 사라의 도움으로 무언가를 얻어서는 안 되는데, 이것은 영혼의 빈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요기는 물건을 모으는 것이나 저장하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약함을 의미한다고 여긴다. 그는 그 앞에 달의 모습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믿음을 지킨다. 달(月)이 없는 보름 동안에는, 사람들이 잠든 늦은 시각에 달이 뜸으로써 사람들은 그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지 못한다. 달의 광휘는 점점 줄어들지만, 그것은 그 행로를 이탈하지 않고, 사람의 무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달은 태양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 다시 둥근 보름달이 되고, 그때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파 리그라 하는 따르다 보면, 요기는 그의 삶을 가능한 한 검소하게 꾸리게 되고, 심적으로 어떤 것에 대한 부족함이나 손실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러고 나면, 정말 자신이 필요한 것은 저절로 꼭 알맞은 시기에 그를 찾아온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끊임없는 혼란과 좌절 그리고 그에 대한 업(業)의 반사작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평정한 마음자리를 지니기란 참으로 힘들다. 구도자는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만족할 줄 아는 능력을 개발시켜 왔다. 그건 고로, 그는 세계가 빠져들고 있는 환상과 불행의 영역을 넘어선 평화를 얻게 된다. 그는 「바가바드기타」 9장에서 크리슈나 Sri Krishna가 아르 쥬나 Arjuna에게 한 약속을 기억할 것이다.
"오롯한 마음으로 나를 섬기고 매 순간순간 나와 조화를 이루는 이에게 나는 완전한 평온을 줄 젓이며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줄 것이며 영원토록 그들을 보호하리라."
'Pranayama(프라나야마, 호흡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3단계 (0) | 2024.12.12 |
---|---|
2단계 (0) | 2024.12.12 |
발다스 , 나디스, 차크라스 (0) | 2024.12.12 |
쿰바카 (0) | 2024.12.12 |
도움말과 주의 사항 (0) | 2024.12.12 |